도포제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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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248회 작성일 22-02-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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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제(都浦祭) 줄다리기

 ▣ 전승마을 :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 실  행  일 : 음력 정월 5일

 ▣ 수상내용 : 

     - 1990년 제19회 남도문화제(여수진남체육관) 종합최고상

     - 1991년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우수상(전남도대표) 문화관광부장관상, 3위

 ▣ 발굴 : 영암문화원 · 영암군


영암군 도포마을의 '제(祭)줄다리기'는 150년 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서 마을의 터가 돼지(格) 형국이라 해서 밥구시혈(穴)에 천제단(天帝壇)을 설단(設)하고 해마다 정월 5일과 칠월 칠석날에 제(祭)를 지내 지기(地氣)와 지운(地運)을 향수(享受)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욱이 제(祭)줄다리기에 대한 설화(說話)는 흥미롭다. 마을터가 돼지산인데 이 명당을 해치려는 서쪽 사자산과 북쪽 호랑이산(虎山)이 있어 이 맹수(猛獸)의세력을 막기 위해 천신(天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무사(武士)가 호랑이 산과 사자산을 겨냥하여 화살을 쏘는 주술의식(呪術儀式)이 끝나면 동(東)도포와 서(西)도포 편을 갈라 터누르기 제(祭)줄다리기로 하루행사가 끝난다. 이 줄다리기의 특징은 풍수지리사상에서 유래된 향토신사(鄕土神社)이다. 천제(天帝)인 제의성(祭儀性)과 활을 쏘는 주술성(呪術性), 연극성(演劇性) 그리고 줄을 달이는 모의적 놀이성이 복합된 훌륭한 민속문화 유산이다. 더욱이 오늘에 되찾아야 할 향토축제 문화의 참모습에 대한 검증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해창만 바닷물이 때맞추어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인근에는 아직 정착해 생활하는 사람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산림이 우거져 소나무가 푸른평야를 이루었다. 맹수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포수들이 북쪽을 떠나 이곳을 거쳐 월출산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김포수 오늘은 이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높은 산은 없지만 혹시 월출산호랑이라도 내려 왔을지 모르거든”
같이 온 강포수는 너털 웃음을 흘리며 화살통을 벗었다.
북쪽 지역은 이미 눈에 쌓여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었다. 설악산을 떠난 두 포수는 내장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와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아 영산포 호피상한테 팔고 난 후였다. 그 당시 월출산 호피는 비싼 값으로 팔렸다. 지리산이나 두륜산 호피보다 비싸게 팔린 이유는 암벽이 많은 월출산 호랑이는 먹이 사냥을 위해 그만큼 절벽을 더 뛰어 다녀야 했다. 매일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호랑이는 한번 박차고 나가면 십리를 간다는 말이 있었다.

"호랑이 발자국이 예사롭지 않군."
강포수는 계곡물이 흐르다만 모래톱에 찍혀 있는 멍석만한 발자국을 유심히 관찰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금껏 보아온 호랑이 발톱은 커봐야 손바닥 정도인데 여기 찍힌 발자국은 크기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김포수 포수 생활 삼십년 만에 처음 보는 대호구먼."
강포수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 채 조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발자국이 앞뒤로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임에 틀림없어.”
옆에서 지켜보던 김포수도 여유로운 얼굴빛을 거두었다. 두 포수는 활과 화살을 점검한 후 머리끈을 질끈 동여맸다.
“김포수 이 두놈만 잡으면 사냥질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강포수는 속으로 지금껏 잡아온 호랑이 숫자를 세어 보았다.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줄곧 잡아 온 호랑이 숫자가 백 마리를 넘고 있었다.
"그래 이번으로 마감을 지어도 부족할 것 없겠구먼." 
두 사람은 마지막 결전을 치를 도전자답게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나갔다. 우선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은신처를 알아본 후 활쏘기 좋은 장소로 호랑이를 유인하여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근 일주일째 방향을 나누어 탐색을 폈다. 일주일만에 만난 두 사람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각각 십리에 사이를 두고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성난 모습으로 노려보는 것이었다. 점심때를 맞추어 두 마리 호랑이는 멧돼지 굴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었다. 두 마리 호랑이가 질주하는 중앙에는 수십 마리 군집을 이룬 멧돼지 떼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멧돼지 떼는 으르렁거린 호랑이 소리에도 놀란 기색 없이 한가롭게 코를 씩씩불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두 마리 호랑이는 멧돼지를 서로 잡으려다 결국 둘이 싸우는 꼴이 되었다. 가장 무서운 결투의 장이 멧돼지한테는 평화스런 터가 되었다.
두 포수는 이런 지리적 요새를 이용하여 우선 멧돼지가 우글거린 장소에 잠복을 하였다.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아 활시위를 당기기 적당한 장소에 하나씩 메달아 두었다. 강포수와 김포수는 서로 등을 맞대고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였다.
"강포수 느낌이 이상하구먼, 전에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느껴지네, 활은 쏘아도 화살이란 놈이 똑바로 나가지 않고 달아나 버릴 그런 걱정 말일세 이번 사냥이 마지막이라서 그럴까?"
김포수는 긴장된 모습으로 굳어 있는 강포수를 돌아보았다. 아침에 살랑거린 바람결이 어느새 비를 머금은 강풍으로 변하여 시커먼 먹구름이 떼로 몰려왔다.
여름도 아닌 한겨울에 먹구름은 이상한 예감을 주고 있었다. 한낮인데도 했볕은 칠흑같은 구름에 싸여 밤보다 어두웠다. 세찬 바람이 흩고 지나가면 천둥이 쩍쩍 갈라지는 번개불을 토해 냈다.
"김포수 대호다 화살을 쏴!"
천둥과 번개가 어우러진 혼란을 틈타 두 마리의 호랑이가 비호같이 달려들었다. 길목에 먹이로 놔둔 멧돼지도 아랑곳없이 질주해 왔다. 번개보다 밝은 불을 뿜으며 김포수 강포수를 덮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두 포수가 목표가 아니었다. 단지 서로 싸우기 위한 맹공격이었다. 숨어있는 두 포수 위를 휙휙 나르며 호랑이는 다시 제자리로 사라졌다. 기절하여 쓰러졌던 두 포수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둘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신령님께 빌었다.
"천지 신명이시여 두 마리 대호를 잡고 사냥을 마치게 해주옵소서.”
심마니가 산삼을 얻길 기원하는 것처럼 두 사냥꾼은 대호를 잡게 해주십사 기원하였다.
두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덤벼오는 호랑이 쪽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때 하늘이 쏟아지는 뇌성이 땅을 진동하였다. 달려오던 호랑이는 그대로 굳어 산으로 되고 말았다. 동쪽에서 달려오던 호랑이는 월출산 호랑이라모습 그대로 굳고 말았다. 서쪽에서 달려온 호랑이는 바다 건너온 호랑이라 죽어서 본래의 모습인 사자로 변하여 산이 되었다. 두 포수가 떠나간 자리에는 양쪽 끝에 화살촉이 메인 큰 밧줄이 길게 놓여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남아 있는 밧줄과 산 모양을 보고 서로 줄다리기를 시합하였다. 이긴 편은 상으로 돼지 한 마리를 받았다. 현재도 동도포와 서도포는 해년마다 정월 5일과 7월 칠석날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다.


『구 성』

 - 길놀이 : 양편은 줄머리에 각종기와 농악을 앞세우고 줄소리에 맞추어 기세 있게 길놀이를 하면서 제단 앞 넓은 들판으로 행진

 - 진놀이 : 결전장에 도착하면 줄 위의 장수와 “살판재비”가 올라 줄재주와 용맹을 겨루면서 전의를 돋구고 격렬한 함성과 함께 줄머리를 높이 솟구쳐 겨루며 진편이 화가 나면 고와 고를 맞부딪혀 힘으로 밀어붙인다. 만약 서편 숫줄이 밀리면 동편 암줄로부터 음담패설이 터져 나옴.

 - 고걸이 : 양편 줄꾼들은 고걸이 과정에서 결혼과 성행위를 풍자하는 익살과 재담이 교환되면서 수라장이 되며 양편 대장들의 설득으로 고 를 걸고 참나무 비녀목이 꽂아진다.

 - 제 사 : 양편 대장들은 영기(令旗)와 농악대를 거느리고 제관이 기다리는 제단에 도착하여 당산 굿을 마치면 삼헌제례와 독축이 끝난 후 양편대장이 호산과 사자산을 향하여 화살을 쏘면 고요했던 들판이 결전의 열기로 가득함.

 - 결 전 : 취수의 나팔소리에 이어 징소리와 함께 격렬한 한판으로 승부가나고 승자는 패자의 줄꼬리를 잘라 신명나게 승전가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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