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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891회 작성일 22-09-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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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태생. 대한민국의 가수. 1970~80년대에 인기가 많던 가수였고 당시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트로트 3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수미의 대표곡 '여고시절'은 노래를 취입할 가수 선정을 놓고 여가수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곡이었다 

1970년 데뷔 무렵부터 스타성이 보였던 이수미를 정상의 가수로 끌어올린 곡은 그녀의 대표곡 '여고시절'이다.

1972년 작곡가 김영광은 신곡 '여고시절'을 취입할 가수를 선정하기 위해 오아시스레코드에 전속된 모든

여가수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다.

이때 방주연과 이수미는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면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당시 막내 가수였던 이수미는 마지막 순서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김영광은 “이 곡은 네가 주인이다”라며 곧바로 기타 3대의 반주로 동시녹음에 들어갔다

이수미의 대표곡 '여고시절'은 노래를 취입할 가수 선정을 놓고 여가수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곡이었다.

1970년 데뷔 무렵부터 스타성이 보였던 이수미를 정상의 가수로 끌어올린 곡은 그녀의 대표곡 '여고시절'이다.

1972년 작곡가 김영광은 신곡 '여고시절'을 취입할 가수를 선정하기 위해 오아시스레코드에 전속된 모든

여가수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다.

이때 방주연과 이수미는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면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당시 막내 가수였던 이수미는 마지막 순서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김영광은 “이 곡은 네가 주인이다”라며 곧바로 기타 3대의 반주로 동시녹음에 들어갔다. 1972년 2월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여고시절'을 타이틀곡으로 한 이수미의 첫 독집 앨범을 발매했다. 졸업 시즌을 겨냥한 앨범이었기에 이수미는 여고생 콘셉트로 교복을 착용한 사진으로 재킷 커버를 장식했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 타이틀곡 '여고시절'은 라디와 TV에서 매일같이 흘러나오며 단번에 폭발적인 반응을 몰고 왔다. 이수미는 '여고시절'이 크게 히트하면서 각 방속국에서 신인가수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상, TBC 7대 가수가수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그해

10월에는 강대선 감독이 10대 청소년의 수채화 같은 사랑을 그린 동명의 영화 '여고시절'이

서울 을지극장에서 개봉해 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여고시절'은 이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남녀 가수가 시대를 초월해 리메이크했다.

취입 경합에 실패한 방주연도 훗날 이 곡을 리메이크했고, 나훈아, 이용복, 이상렬, 김인순, 태진아, 박상규, 이주랑, 최진희, 금잔디 등도 '여고시절'을 다시 부른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무수한 7080 히트곡 모음 CD에 수록된 '여고시절'은 이수미의 대표곡이자

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의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 (1972) TBC 7대 가수상
  • (1972) TBC 최고 여자가수상
  • (1972) MBC 10대 가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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