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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m7695
  • 2022-05-31 14:30:14

10)고미현 서원종

 고미현 서원종은 영암에 현존하고 있지는 않고 일본 광도현 죽원시 조연사에 소장하고 있다. 이 서원종은 고려 광종 14년(963)에 제작된 종으로 규모는 총고 57cm, 구경 39cm, 10행 14자이다. 고미현 서원종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고 있고, 원문만이 '조선금석총람'(권상p196) '조선금석고'(p339), '조선금석쇄담'(p67), '한국금석유문'(p293)등에 전한다. 고미현 서원종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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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om7695
  • 2022-05-31 14:17:47

9)엄길리 암각매향비

 엄길리  암각매향비(지방기념물 119호)는 엄길리의 진산이라 할 철암산(해발 120m)의 7부 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바위'의 한편쪽 작은 틈새에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산강의 만입처(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른믄 물이 해수와 마주치는 지점으로, 대개의 매향비들이 위치하는 입지조건과 같은 것이다. 이 비는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 발굴 조사중 주민들의 전언을 토대로 조사한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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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om7695
  • 2022-05-31 11:30:49

8)메밀방죽옆 장생

  서구림리 산 58-1번지에 있는 이 장생(지방민속자료 20호)은 군서면 구림에서 용당간 국도를 따라 서구림리와 학산면 용산리 경계인 메밀방죽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장생은 죽정 국장생이나 소전머리의 황장생처럼 잘 다듬은 사각석비형 장생이 아니고 자연화강석을 그대로 이용한 장생이다. 전면에는 고어체로 'ㅁ장생'이 음각되었는데 첫 글자는 한쪽이 떨어져 나가 판독하기가 힘들다. 이 장생은 앞의 국장생. 황장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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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om7695
  • 2022-05-31 11:07:08

7)소전머리 황장생

 동구림리 433-3번지에 있는 황장생(지방민속자료 19호)은 동구림리의 영암. 목포. 도갑사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도갑사 방향 오른쪽 4~500m거리 소전머리 대나무 밭에 위치한다. 뒷면 모서리가 약간 깨어져 나가 사각석비형 입석장생인 이 황장생은 높이가 1.2m로 전면에'황장생'세자가 음각되어 있다. '장생'이란 표기는 주로 신라와 고려전기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고려말과 조선전기 이후로는 '장'이란 표기가 많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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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om7695
  • 2022-05-30 17:26:21

6)죽정리 국장생

 도갑리 산 114-4번지에 있는 죽정 국장생(지방민속자료 18호)은 장방형의 자연석재를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사각석비형의 입석장생이다. 군서면 구림리에서 도갑사쪽으로 1km쯤 되는 곳의 굽은 길 북쪽 숲속에 위치한다. 현재 장생의 위치는 도갑사의 옛길로 전하고 있어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위해 세워졌던것으로 보인다. 이 국장생의 전체크기는 높이 1.25m, 너비 0.67m, 두께 0.36m이다. 장생의 전면 상부에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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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om7695
  • 2022-05-30 16:57:07

5)도갑사오층석탑

 도갑사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석탑(지방유형문화재 151호)으로 앞마당에서 조금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단층기단에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갖추었고 상륜에 로반과 보주를 구유하고 있다. 세부형식을 보면 기단부 하부구조인 지대석은 지하에 매몰되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단층기단으로 추측된다. 기단면석은 4매판석인데 전후면의 면석은 감입식으로 끼어넣었고 좌우면석은 벽판석으로 결구하였다. 우각으로는 양편에 우주가 표출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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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om7695
  • 2022-05-30 15:46:43

4)월곡리 마애여래좌상

 이 마애불(지방유형문화재 149호)은 월출산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이 위치한 구정봉에서 직선거리 2~3km 떨어진 산봉우리의 바로 밑 군서면 월곡리 호동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5km 정도 올라가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 계곡을 '서난골'또는 '서당골'이라 하고 있으며 이 불상이 위치한 암자 이름을 '몽령암'이라 부르고 있다. "동국여지지"에 '몽영암구좌월출산'이라 기록되고 있어 이곳 암자가 '몽령암'인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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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om7695
  • 2022-05-30 14:29:12

3)성풍사지 오층석탑

 이 석탑(보물 1118호)은 원래 2층 옥개석까지만 남아 있었으며 기단부도 하대중석 두 개가 유실되는 등 그 훼손이 심한 상태였으나 1986년 복원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당시 3층 탑신과 4층 옥개석 및 4층탑신이 인근 마을인 춘양리에서 수습되어 새로운 재료로 삽입되는 탑재를 실측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편 이 탑의 복원을 위한 해체과정에서 1009년, 즉 고려 목종 12년(총화 27년)이라는 절대년대가 기록된 탑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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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om7695
  • 2022-05-30 14:24:34

2)도갑사 석조여래좌상

이석불(보물 89호)은 도갑사 경내 대웅전에서 뒷편으로 숲속길을 지나 150cm쯤에 위치한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건물은 1986년 5월에 해체복원했다. 이 석불은 광배와 본존이 같은 돌로 조각되었다. 상호는 원만상으로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있고 눈은 정안이며 코와 입등이 잘 조화되어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의문이 약간형식화되김 하였으나 정제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밑으로 내려와서는 가부좌를 한 무릎의 폭이 넓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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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om7695
  • 2022-05-30 13:58:58

1)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이 마애불(국2보 144호)은 월출산의 구정봉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다. 불상의 총높이는 8.5m이며 방향은서쪽과 북쪽의 중간지점을 보고 있다. 이 마애불이 위치한 사지에서 1985년 여름 '용암사'라는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동국여지지에 "용암사좌월출산구정봉하유구층부도"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원래의 사명은 용암사였음을 알 수 있다. 자연석으로 된 사다리꼴 방형에 암벽의 양각으로 새겼으며, 맨 밑의 좌대 이하는 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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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om7695
  • 2022-05-30 10:50:17

4. 미술. 공예. 민속자료

 이미 신라말부터 활발한 활동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암지역의 불교문화는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국가적인 승불정책과 아우러져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현재 영암지역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유물. 유적들 역시 대부분이 불교유물들이거나 불교에 관련된 것들로서, 본 절에서는 영암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 유적들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영암지역에 흐르던 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영암 일원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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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om7695
  • 2022-05-27 10:21:04

3. 풍수지리

 중국에서 전래된 풍수지리설은 신라 말기에 이르러 호족세력의 대두와 함께 널리 전파되어 정치, 사회 등 각종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풍수지리설은 산세, 수세를 살펴 도읍. 주택. 능묘 등을 선정하는 지상학으로서, 동양 고대과학의 한 특성인 선비적인 요소만을 제거하면 천문학이나 인문지리학 등 훌륭한 과학으로 볼 수 있었다. 풍수지리설은 신라말 영암 출신의 선승 도선국사에 의하여 크게 선양되었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은 도선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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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om7695
  • 2022-05-26 14:27:07

2. 불교문화

고려시대에는 불교 국가라 할 만큼 불교적 성격이 강한 국가영ㅆ다. 숭불정책은 태조 왕건의 통치 이념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던 만큼, 종교. 사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등 현실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려의 불교는 건국초 부터 국왕의 옹호와 성원을 받아 성장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국가나 개인의 현재 생활에 행복과 이익을 준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고려 왕실은 국가를 비보하고 국이민복을 가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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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om7695
  • 2022-05-26 10:55:49

제4절 문화--1. 유교문화와 영암

 고려시대에는 유교가 정치 이념으로 체택되어 크게 발달되었다. 유학은 일찍이 중국에서 전래되어 왔지만, 현실 생활에 있어서 불교에 비해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후 '훈요십조' 등에서 유교적 정치이념을 강조하였고, 또한 그의 주위에 경사에 능통하고 학문에 능력있는 유학자들을국정에 참여시켰다. 영암 출신 최지몽과 최광윤, 박유 등이 그들로 이들 학자들은 왕건에게 유교주의에 입각한 국가의 운영을 권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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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om7695
  • 2022-05-25 16:21:10

3. 최지몽(907~987)

 최지몽은 효공왕 11년(907) 영암의 구림에서 태어났다. 최지몽의 처음 이름은 총진으로 그의 부친 상흔은 원보의 벼슬을 지녔던 영암지역의 호족이었고, 최지몽은 호족이라는 유복한 가정 분위기속에서 일찍부터 학문을 연마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지몽은 어려서부터 배움을 즐겼다고 하며, 자라서는 대광현일을 스승으로 모시고 역사를 두루 설렵했다고 한다. 서남해안 해로의 요충지로 중국의 선진 학문을 일찍부터 수용했던 선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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