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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행 댓글 0건 조회 1,095회 작성일 22-05-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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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길리  암각매향비(지방기념물 119호)는 엄길리의 진산이라 할 철암산(해발 120m)의 7부 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바위'의 한편쪽 작은 틈새에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산강의 만입처(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해수와 마주치는 지점으로, 대개의 매향비들이 위치하는 입지조건과 같은 것이다. 이 비는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 발굴 조사중 주민들의 전언을 토대로 조사한 것인데, 석태는 많이 끼었으나 자연암벽의 좁은 통로 한쪽 벽에 은폐 혹은 풍우를  피할 수 있는 위치였고 따라서 비교적 비문도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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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은 특별히 정제하여 비면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상. 하 행렬이 정연하지는 않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매향주도자, 년도, 입치, 매향집단, 발원자가 밝혀진다. 비면만의 규격은 가로 130cm, 세로 90cm이고 자경은 대소의 차가 커 6~3cm, 총 18행 129자(판독불명 5자)이다. 암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새겨진 점이 특이한데, 비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연대 : 석가황반후이천삼백사십구년갑신팔월십삼일(1344년, 고려 충목왕 워년으로 추정)

2)목적 : 용화초회공양

3)장소 : 고을미북촌ㅁ을포

4)매향집단 및 발원자 : 미타계내천만입(발원자:천을미분, 김대ㅁ, 김금물, 갑일소, 김동화, 김양병)

5)화주 및 각주 : 급암, 진암, 대ㅁ

 이 매향비문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지방의 민간신앙을 살피는 동시에 향촌 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특히 연대를 불기로 쓴 점이나 미타계라는 신앙결사명이 보이는 점, 당시 이두문체와 지방관직명이 나타나는 것 등이 주목된다. 더불어 고려에서 조선초로 넘어가는 한국 사상의 전환기를 이 매향자료를 통해 봄으로서 당시의 전환기적 성향과 민중신앙의 전이과정을 추적할 수 있은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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