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행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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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734회 작성일 22-04-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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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행립(曺行立, 1580~1663)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태호, 자는 백원(百源)이다.

장대한 모습에 품행이 단정하고 의지가 굳세었다.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의 문하를 드나들면 문경공(文敬公) 김집(金集)과 좋은 벗이 되었다. 김집이 일찍이, “내 친구로 한 사람을 들라면 단지 조백원(曺白源)뿐이다.”고 말했다. 벼슬자리에 천거되어 네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다스리던 모든 고을에서 명성과 공적을 남겼으며, 「여씨향약(呂氏鄕約)」과 같은 규약을 만들었다. 고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그의 제사를 모셨다.

*여씨향약(呂氏鄕約) : 송(松)나라의 남전(藍田) 여씨 문중에서 향리를 교화하기 위해 약속한 것이다. 주자(朱子)의 가감, 증보에 의하여 더욱 완비되어 「주자대전(朱子大全)」에 오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중종(中宗) 12년(1517)에 각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주자의 「증손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인쇄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다. 이후 「여씨향약(呂氏鄕約)」 그 바탕을 두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입안한 향약, 즉 이황(李滉)의 「여씨향약(呂氏鄕約)」, 이이(李珥)의 「서원향약(西原鄕約)」등이 보급되었다.

출처 : 여지도서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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