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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행 댓글 0건 조회 1,423회 작성일 22-05-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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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군은 고려초 이래 2군 3현을 거느리는 큰 고을로서 나주, 전주와 더불어 대읍으로 존재하였을 뿐만아니라 많은 문화유산과 유적들을 간직한 유서깊은 고장이다. 영산강을 젖줄로 낮은 구릉이 평야지대를 만들어 물산이 풍부한 뿐만 아니라 호남의 명산인 월출산은 이 지역의 인물들로 하여금 문제적. 사상적으로 빼어난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더불어 서남해안 해로의 요충지였던 까닭으로 일찍부터 개화되었던 선진 학문은 선사시대이래 찬연한 지방문화의 향유를 가능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영암 지역에서 지방문화 창달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성씨로는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몇개의 성씨가 있으나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성씨들이 영암지역에서 기득권을 누를 수 있었던 토착성씨들로서 호족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도선국사 아버지가 태종 무열왕의 8대손이라고 전해지고 있고, 동진대사를 배출한 김씨는  재지적 기반을 바탕으로 학문적 소양을 갖출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최지몽을 배출한 낭주최씨가 중앙 관료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영암지방의 호족세력으로 이 지역에서 중용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성씨들은 강한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큰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성씨들은 려말선초 불안한 행정적인 공백기와 영암지역에서 기득권 상실 등을 이유로 새로운 성씨들로 재편되어 간다.

 이들 토착성씨들이 영암지역을 이끌어왔다면, 영암지역 출신으로 고려의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들이 있었다. 한국 풍수지리설의 시조이며 선종 불교의 경제가인 선각국사 도선, 고려의 창업에 도움을 준 동진대사 경보. 고려초기 정계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별박사 최지몽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시대에 활동하였던 인물들로 고려개국후 영암지역의 지위 격상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활동상황이나 진출배경 등을 살핌으로서 고려시대의 영암지역 전반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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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주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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