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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643회 작성일 22-02-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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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다리 (덕진면 덕진리)
때는 신라시대였습니다. 영암읍에서 십리 쯤 떨어진 강변에 객주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덕진이라는 여인이 일찍이 혼자되어 이곳에서 길가는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갈증 나는 목을 축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덕진과 영암 사이에는 영암천이 가로 놓여 있는데, 영암천은 비만 오면 물이 불어 사람이 건너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영암을 감싸고 돌아 흐르기 때문에 갈 길이 없었습니다.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물이 많은데도 가끔 고집을 부리고 건너다가 변을 당하는 수도 있었습니다. 바쁘다고 초조해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함께 걱정을 해주곤 했습니다.

"아주머니, 술 한잔 주소."
"예예, 어서 오시오, 옷이 다 젖었구먼요."
"무슨 비가 이리 많이 오는지, 원. 빨리 소식을 전해야 하는디."
객주에 들어온 사람은 술을 한 잔 들이키고는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후에야 되돌아 오더니.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 있으려나 싶어 나가 봤더니 도저히 안 되겠구먼, 큰일났네. 어떻게 해야 쓴담."
"함부러 건너 가시다가는 물귀신 됩니다."
그 사람은 바쁘다고 해대며 초조하게 연방 술잔을 비웠습니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면 좋것지라."
"주모는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가, 아 좋다뿐이겠소."
"이곳에 다리를 놓는다면 얼마나 들까요?"
주모는 지나가는 소리로 슬쩍 물어 보았습니다.
"왜? 주모가 다리를 놔줄려고."
"아~니요, 그냥 물어본 것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삼백냥은 족히 들거요."
"삼백냥, 삼백냥이라."
여인은 삼백냥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습니다.
여러 해 동안 영암을 오가는 행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아 왔던지라 그들을 도와줄 일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옳지, 다리를 놓도록 하면 되겠구나, 내게는 그만한 돈이 없는데 어쩌지. 아냐, 푼푼이 모으면 될 수도 있을거야." 여인은 그날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빈 항아리를 마련하여 두고, 일이 끝나면 벌어들인 돈을 그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언제 그 돈이 모아지려나 까마득하게 여겼지만, 동전은 바닥을 채우고 차츰 불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리가 생기면 통행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변을 당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흐뭇하였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도 한가지 일이라도 해야할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왔던 그녀의 손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고운 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반면에 항아리는 거의 동전으로 채워져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다리가 놓이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가는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여인은 곧 다리가 놓일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항아리의 돈이 삼백냥 쯤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을 고을에 기증할 적당한 날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그 항아리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상주도 없는 초라한 상여 한 채가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왜, 죽었당가.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 글쎄. 아무런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다 하네."
구경 나온 아낙들은 갑작스런 덕진의 죽음을 아까워 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을의 원님이 바뀌었습니다.
원님이 부임한 첫 날 밤이었습니다.
"원님, 제 소원하나 들어 주십시오."
"아니, 넌 도대체 누구냐?"
원님은 흰 소복을 입고 나타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님,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십리 쯤 가는 덕진리에 살았던 덕진이라는 여인이옵니다."
여인은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소원은 영암과 덕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 평생 동안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염라대왕의 부르심을 받고 이승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살던 집의 부엌에서 서쪽으로 다섯 걸음만 가서 땅을 파 보십시오. 그러면 항아리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원님, 부디 저의 소원을 풀어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을 한 여인은 큰 절을 하고 물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깬 원님은 너무도 생생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다음날, 그곳으로 가서 그 여인의 말대로 다섯 걸음을 가서 파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영암과 덕진 사이에는 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인의 갸륵한 뜻을 살려 다리의 이름을 덕진교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 마을에서는 그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덕진다리는 그후 새로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덕진다리는 그때의 석물만이 남아 덕진 여인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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