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옥(만화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348회 작성일 23-02-20 09:39

본문

1676853287.9557twqTsRGXNs.png

윤영옥 (1939.09.02~ 2007.03.07, 영암군)

경력사항:

  • 2001.~2003.
    목원대 미술대 미술학부 만화예술과 겸임교수
  • 1972.~1977.
    전남매일신문 편집국 편집위원
  • 1967.~1972.
    서울신문 까투리여사 연재

작품 연보

1961. 잡지 <소설계>에 <엉털즈> 발표
1965. <메뚜기> 연재
1967. <서울신문>에 <까투리 여사> 연재 (1972년 연재 중단, 1977년 연재 재개 후 1994년까지 연재)
1973. <엉뚱이> 연재
1976. <쌕쌕이> 연재
1980. <오똑이> 연재
1986. <한국신문만화사> 초판 출간
1991. 에세이 집 <4컷 속에 인생을 담고> 출간
1995. <또랑이 일기> 발표, <한국신문만화사> 증보판 출

1939년 9월 2일에 출생하여 2007년 3월 7일에 타계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신문과 잡지를 오가며 시사만화에서부터 아동만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서울신문에 20여 년간 연재한 <까투리 여사>는 우리나라 신문만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꼽힌다.

수년간 자료를 모아 1986년에 첫 선을 보인 <한국신문만화사>는 일제 시대부터 당대까지 신문만화의 흐름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만화에 대한 데이터 구축의 선구적 사례로 꼽힌다. 2006년에 고바우만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프로필에서 본격적인 ‘데뷔’로 기록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965년 3월, <전남매일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메뚜기>부터다. 학생 신분으로 연재를 시작한 <메뚜기>는 1980년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인한 해당 매체의 종간호까지 계속 되었으니, 시간적으로는 15년 8개월, 연재횟수로는 총 4844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편, <전남매일신문>과 <전남일보>가 통폐합되면서 새로 창간된 <광주일보>에서도 <오똑이 선생>을 약 1년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당시 시사만화가 정기적으로 연재되지 않고 있던 <서울신문>에 둥지를 튼다. 헌데, 졸업과 <서울신문>의 연재시작 사이에는 약 1여 년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는 시사만화가로서의 그의 출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김용환, 김성환 등 당대 내로라하는 기성만화가의 명성에 비한다면 지명도가 부족한 자신의 이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련 기간을 거친 셈이다. 그러한 수련의 대표적인 예는 만화가로서는 드물게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만화가가 전시회를 가지는 것이 생소했던 당시 그는 만화전시회를 기획해, 창작부터 장소 섭외 그리고 홍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전시회가 열린 서울의 중앙공보관에는 연일 많은 관객들이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1967년 3월, 그는 <서울신문> 지면 가운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서울’에 <엉뚱이>이라는 작품을 약 반 년 간 연재하게 된다. 그리고 1967년 8월, 마침내 자신의 대표작 <까투리 여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까투리 여사’는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와 더불어 국내 대표적인 여성캐릭터다. 여성 성인캐릭터가 드물었던 한국 신문만화에서 다양성을 확보시킨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측면보다 생활에 밀착해 서민들의 일상을 담아낸 것이 특징적이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은 <까투리 여사>를 연재하기까지 보인 윤영옥의 끈기와 노력에 대해 “신인이면서 제반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공보원 화랑에서 만화 개인전을 연 바 있는 윤영옥 씨는 서울신문에 <까투리여사>를 연재하여 순수한 가정만화로 독자들의 비상한 시선을 모아 꾸준히 연재”1)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편, <까투리 여사>에 얽힌 필화사건은 국내 신문만화 캐릭터와 관련된 필화사건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서울신문> 1972년 6월 15일자 <까투리 여사>에서 윤영옥은 당시 농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같은 해 6월 30일자로 서울신문사를 떠나게 된다. 다행히 5년 뒤인 1977년 7월에 복귀하게 되어 중단되었던 1488회에 이어 1489회로 연재재개가 이루어졌다. 이후 1989년 5월에 5,000회를 맞이했으며, 1994년 8월 말에 누적횟수 6773회로 마무리되었다. 연재 당시, 여성을 연상케 하는 작가의 이름으로 인해 남성독자로부터 구애편지를 받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