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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704회 작성일 22-09-02 16:50본문
김죽파는 김창조의 큰 손녀로 본명은 김난초(이고, 예명은 운선이다.
해방이후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 보유자
8세 때 할아버지로부터 가야금을 시작하였으며, 할아버지가 죽은 뒤 11세부터 13세까지 한성기(韓成基)로부터 산조와 풍류 그리고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또한,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하여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1926년 16세에 상경하여 여류가야금연주자로 최고의 명성을 떨쳤다. 이때 그는 조선권번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가야금 이외에도 판소리는 김봉이(金鳳伊)·임방울(林芳蔚)·김정문(金正文)을, 승무는 한성준(韓成俊)을, 그리고 병창은 오태석(吳太石)·심상건(沈相健)·박동준(朴東俊) 등을 스승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1931년 한성준의 반주로 산조 및 병창을 SP판으로 오케레코드(Okeh Record)사에서 취입, 출반하였다. 1932년 22세에 혼인하였으며, 다음해부터 모든 연주활동을 중단하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기 시작한 1955년 경부터 일반인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치면서 음악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널리 연주되던 산조에 단모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할아버지 김창조와 한성기로부터 배운 산조에 176장단과 무장단의 세산조시를 작곡하여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세산조시의 틀을 완성시켰다. 1956년 김창조계와 다른 산조인 심상건류를 그로부터 배웠고, 1963년 아쟁산조를 한일섭(韓一燮)으로부터 배웠다.
1978년 67세에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가야금을 배운 지 60년 만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공개연주를 가졌다. 1979년 할아버지 김창조가락에 진양조 7장단·중모리 4장단·자진모리 4장단·휘모리 51장단과 무장단의 일부분, 그리고 세산조시 7장단 등 많은 가락을 추가하여 약 55분에 이르는 김죽파산조를 완성시켰다.
1979년 성음사에서 LP판을 출반하였고, 1980년 한국문화재보호협회에서 『한국전통음악대전집』 중 제13집인 가야금산조 음반을 출반하였다. 1985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2회의 연주를 하였으며, 1988년 일본 킹레코드사에서 가야금산조 CD를 출반하였다.
1989년 일본 오사카[大阪]과 동경에서 연주하였으며, 같은 해 뿌리깊은나무사 제작으로 『가야금산조전집』을 출반하였다. 이재숙(李在淑)·김정자(金靜子)·양승희(梁勝姬)·문재숙(文在淑) 등 많은 연주자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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