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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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854회 작성일 22-04-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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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鄭運)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어려서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으며 큰 뜻을 품고 지냈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군(郡)·현(縣)의 지방관을 맡았는데, ‘충정보국(忠貞報國)’이라는 네 글자를 칼에 새겨 놓고서 스스로 다짐했다.

임진왜란 때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왜적을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느닷없이 총알에 맞아 죽었다. 왜적들이 서로 축하하며, “정운 장군(將軍)이 죽었으니, 그 나머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나라에서는 정운의 충성스러운 절개를 기특하게 여겨 벼슬을 추증(追贈)하고, 그가 살던 마을에 정문(㫌門)을 세워 표창했다.

고을 사람들이 사당(祠堂)을 세우자, 나라에서 ‘충절사(忠節祠)’라는 현판 이름을 내려주었다.


출처 : 여지도서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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