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준(崔琪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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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256회 작성일 23-02-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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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준(崔琪焌)[1896~1957]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호는 지암(芝菴)이다. 활동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西鳩林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1 운동 당시 영암 지역에서는 영암읍의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과 서구림리의 박규상(朴奎相)·최한오(崔漢五)·조병식(曺秉植) 등이 중심이 되어 영암 장날인 4월 10일 오전 9시를 기하여 두 곳에서 일제히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당일 최기준은 조병식 등과 함께 구림 보통학교 교정에서 비상 나팔을 불어 보통학교 학생과 주민들을 불러 모은 다음,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3백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와 보통학교 사이를 행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6월 27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최기준의 공훈을 기려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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