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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545회 작성일 22-03-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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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장암정


영암읍 장암의 동계는 남평 문씨들이 덕진면 영보로부터 장암정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던 시기였던 현종 8년(1677)에 창설되었다. 이 때의 동계는 다른 동계들과 마찬가지로 사족적 기반을 전제로 마련되었으나, 이후 점차 향촌 통제적인 규약을 첨가하면서 보완되어 동족적인 사족계의 성격보다는 상·하 합계 형태로 촌락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조직으로 변화되어 갔다. 예컨대 정조 11년(1787) 전면적인 동약의 중수를 할 때 그 서문을 쓴 문찬주는 근년 이래로 향론이 분열되고 규약이 유명무실해졌을 뿐 아니라 시세에 맞지 않는 조목들이 많아 변동이 불가피하며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약의 수정이 마땅함을 지적하고 있다. 

1787년의 중수에서는 종래의 조목들을 이정·재편하면서 여기에 권학조(勸學條)와 여속조(勵俗條)를 첨부하였으며, 이 때의 중수 동약은 이후 부분적인 추약들을 첨가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장암의 동계도 남평 문씨들의 동족적인 배경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동계의 창설(1668년)이 남평 문씨들이 주축이 되어 장암에 건립한 구암사(龜岩祠) 창건(1667년) 직후에 이루어졌고, 이 동계 조직의 상징물이라 할 장암정의 건립(1760년), 구암사에 양정재(養正齋) 이건 및 서명백(徐命伯)의 구암사 추배(1778년) 등과 연계선상에서 장암 동계가 전면 중수(1787년)되었던 사실은 그러한 방증(傍證)들이다. 현재 장암정(場岩亭)의 동각(洞閣)에 동계(洞契) 관련 고문서(古文書)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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