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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432회 작성일 22-02-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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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 (도포면 선불리)

월출산 큰 골 기슭에 곧 쓰러질 듯한 초가 한 채가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난 하였습니다. 노인은 끼니를 걸러 가면서도 아들을 건강하게 키워냈습니다. 품팔이를 하여 키운 아들이 이제 청년이 되어 어머니를 봉양하게 되었습니다.
"나무 하러 갈 거냐?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은데 하루 쉬지 그러니?"
"어머니, 걱정마세요. 한 짐 해 가지고 곧 돌아오겠습니다. 바람이 차니 방에 들어가셔요."
아들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습니다. 곧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듯이 검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 한 짐만 해 가지고 돌아와야겠군.' 청년은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은 겨우내 나무를 해버려서 멀리까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쭉 올라가야 했습니다. 청년은 서둘러 나무를 하였습니다. 청년이 바삐 낫질을 해대는 만큼이나 하늘도 더욱 어두어졌습니다. 청년은 나무 한 짐을 제어지고서 달리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얼른 가서 짐을 벗어두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은 계속해서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낫으로 땅을 두드리고 흥얼거리던 청년은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긴 잠에서 나를 깨워주다니, 이런 고마울 데가 있는가?"
청년은 안개에 휩싸여 하늘로 오르는 관세음보살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황홀한 모습에 젖어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추위가 엄습하자 청년은 깜짝 놀라 깨었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조금전까지도 그렇게 휘몰아 치던 눈보라는 어느 새 그치고 햇빛이 온 골짜기를 내리비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굴에서 나와 사방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도 구름에 쌓여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습니다. 청년은 만물이 온통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저것은?" 사방을 돌러보던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무심히 보아오던 그 암벽에 부처님께서 인자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습니다.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었는데......"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다리가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뭇짐을 짊어지고 내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슴에서는 방망이질을 하고 두 다리는 벌벌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발이 허공에서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찌하여 이제 오느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여 무척이나 걱정했구나."
"무슨 일이라니요, 제가 누군데요? 어머니 아들이잖습니까? 그런데, 어머니!"
숨을 헐떡이며 산에서 었었던 일과 본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나, 그렇게 올라다녔어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는데......"
"제가 분명히 보았는 걸요?"
"날씨가 좋지 않고 허기가 져서 네가 헛것을 보았거나 잘못 본 모양이구나."
"어머니도, 참, 뭘 잘못 보다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청년의 눈에는 구름에 휩싸인 관세음보살님과 웃고 계시던 부처님 모습이 번갈아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날이 새자 마자 청년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재빨리 나무를 해서는 짊어지고 그 바위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혹시 어제 자기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부처님이었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소매깃으로 쓱 훔치며 바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음, 역시."
지난 번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부처님은 웃고 계셨습니다.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졌습니다. 가만히 고래를 들고 쳐다보니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웃고 계셨습니다. 그러더니 그 위로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서 손짓을 하였습니다. 청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하였습니다. 청년은 넋을 잃은 듯 바라보다가 한 발 한 발 움직여 바위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옷자락이며 손들을 어루만졌습니다.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였습니다. 청년은 겹쳐 보이는 관세음보살님의 옷자락을 만지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관세음보살이 차츰 멀어져 갔습니다. 아주 사라져 버렸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손 끝을 쳐다보니 바위에 있던 부처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상하네."
아무리 더듬고 살펴보았지만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괴이하여 자꾸 쳐다보았지만 그냥 바위일 뿐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청년은 날이 저물어 내려와야 했습니다. 청년은 매일 그 쪽으로 나무를 하러 가서 바위를 쳐다보곤 하였습니다. 꼭 부처님이 웃으며 반기실 것 같았습니다. 다시 부처님 뵙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한 청년은 그 곳에 부처님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나무를 일찍 해 놓고서 남은 시간은 내내 바위 앞에 앉아서 보냈습니다. 또렷이 떠오르는 모습대로 정을 대고 망치질을 해나갔습니다. 청년은 두 가지 일에 시달려 수척해져 갔습니다. 노인은 아들을 보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어서 장가를 가야 할 텐데."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머님, 걱정마십시오. 끼니도 어려운데 색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날도 지게를 지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를 해 놓고서 열심히 망치질을 하였습니다. 이제 거의 완성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내일까지 하면 마무리가 다 되겠군."
날이 저물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무를 내려놓으면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방문을 열어보니 노인은 반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아니, 어머니."
청년은 어머니를 붙들고 몸부림쳤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양지 바른 곳에 모시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다시 정과 망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부처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렷하던 부처님 모습을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째 바위 앞에 갔으나 아직 덜된 부분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마땅히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무겁게 하였습니다. 이제까지 부처님 모습에만 사로잡혀 망치질을 했던 청년은 부처님을 염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도저히 안 되자 낙담한 청년은 보따리 하나를 짊어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정처없이 발 가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오직 부처님 뵙기만을 소원하였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지치고 허기진 몸을 잠시 쉬기 위해 둑가에 앉았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빠졌습니다.
"여보시오, 날도 저물었는데 그 곳에서 뭘 하고 있소."
"예, 잠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는 못 보던 사람인데 어디로 가는 길이오."
"갈 곳이 없는 사람이옵니다."
"쯧쯧, 행색이 남루하기 짝이 없구려, 저 곳에 가면 빈 절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찬 서리를 피하시구려."

지나던 노인이 일러준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허술하고 초라한 절간이 있었습니다. 하룻밤을 묵은 청년은 왠지 그곳이 낯설지 않고 좋았습니다. 아예 눌러 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멀리 천황봉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청년은 매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제, 어느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에는 소문이 나돌기 사작하였습니다. 절에 생불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절을 찾았고, 부처님께 하듯 예불을 올렸습니다.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부청의 형상이었습니다. 인자하고 그윽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차라리 부처님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의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였습니다. 한번 잊혀진 부처님의 모습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자 그는 큰 골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그 곳에서 절을 지키고 살았으며, 마을 사람들은 생불이 있다하여 그 절을 선불사라고 하였고, 부처가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선불리라고 불렀습니다. 수산리 선불 마을에는 절은 이미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절터가 남아 있습니다. 또 흩어진 기와 조각이 선불의 전설을 간직한 채 이곳 저것에 뒹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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