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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행 댓글 0건 조회 1,392회 작성일 22-05-31 14:30본문
고미현 서원종은 영암에 현존하고 있지는 않고 일본 광도현 죽원시 조연사에 소장하고 있다. 이 서원종은 고려 광종 14년(963)에 제작된 종으로 규모는 총고 57cm, 구경 39cm, 10행 14자이다. 고미현 서원종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고 있고, 원문만이 '조선금석총람'(권상p196) '조선금석고'(p339), '조선금석쇄담'(p67), '한국금석유문'(p293)등에 전한다. 고미현 서원종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소대왕(昭大王)/ 준풍사년계해구월십팔일고미현(峻豊四年癸亥九月十八日古弥縣)/ 서원주종기(西院鑄鍾記)/ 도인명소동원주(徒人名疏同院主)/ 인령현화상신엄(人領玄和尙信嚴)/ 장노효현상좌(長老曉玄上坐)/ 흔직경예언경(欣直卿乂言卿)/ 대백사(大百士)/ 나주지미 벌(羅州只未 伐)/ 백사(百士)/ 당현총규사간(當縣聰規沙干)”으로, 이는 ‘소대왕(昭大王) 준풍(峻豊) 4년[963] 계해년 9월 18일에 고미현(古彌縣) 서원(西院)의 종을 주조한 기록. 무리들의 이름을 적는다. 이 서원의 원주인(院主人)인 영현 화상(領玄和尙), 신엄(信嚴) 장로(長老), 효현(曉玄) 상좌(上坐), 흔직(欣直) 경(卿), 예언(乂言) 경, 대백사(大百士)인 나주 지미(只未) 벌(伐), 백사(百士)인 이 고미현의 총규(聰規) 사간(沙干)’으로 해석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미현은 월출산 남서쪽인 현재의 미암면 미암리 일대에 있던 고을로서 곤미라 고려시대에 중국 연호 대신 독자적인 연호를 몇차례 쓰는데 준풍은 광종 11년부터 14년까지 4년간 쓰였던 연호이다. 영암이 개경과 떨어진 지역이었지만 4년간 사용한 연호가 새겨진 유물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중앙정부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시기는 영암 출신 최지몽이 56세되는 해로서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는 점과 관련하여 앞으로 보다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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