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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399회 작성일 22-03-02 10:59본문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도선국사와 수미대사 관련 탑비. 보물
통일신라시대의 선승인 도선국사와 도갑사를 중창한 조선시대 수미왕사를 추모하는 비이다. 비문의 음기(陰記)주 01)에 따르면 건립 동기는 옛날의 비가 마모되어 글자를 알 수 없자 승 옥습(玉習)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발원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건립연대는 1636년(인조 14)에 시작하여 1653년(효종 4)에 완성하였다.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가 구비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최근 보물 제1395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517㎝이며, 귀부는 방형의 대좌 위에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있다. 머리는 용두가 아닌 거북의 머리 모양이나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위에서 송곳니가 날카롭게 뻗어 있고 앞발은 다섯 개의 발가락을 내었다.
귀갑문은 일반적인 6각 문이 아닌 평행 음각선으로 5각에 가까운 갑문을 표현하였으며, 등부분에는 하엽(荷葉 ; 연꽃잎)으로 비좌를 표현하였는데 이는 조선 1471년에 건립된 원각사비(보물 제3호) 등에서 보이는 조선시대의 특징적인 형식이다. 앞뒷발에는 고기의 비늘과 같은 문양을 새겼다.
비신은 화강암이며 전후 면에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측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매우 생동감 있고 힘차게 표현되었다.
이수는 한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2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그 위로는 구름이 뒤덮힌 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서로 반대방향을 보고 머리를 쳐들고 있는데 조각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문은 전면 및 좌우측의 비문과 후면의 음기로 구분된다. 전면의 비문은 찬자(撰者)와 서자(書者)가 각각 다른 두 개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 전면 상단에는 전서체로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제액을 만들었으며, 당시 형조판서인 김광욱(金光煜)이 썼다.
전면 좌측의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지었으며, 글씨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이 썼다. 이 비문은 총 16행 714자(자경 4∼5㎝)이며 비제(碑題)는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幷序)”이다. 전면 우측의 비문은 총 10행 512자(자경 2∼3㎝)로서 비면 상하를 모두 채운 것이 아니고 비면 중간에서 시작하였다. 찬자는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인 이경석(李景奭)이며, 글씨는 홍문관 제학 오준(吳竣)이 썼다. 좌면의 비문과 음기의 찬자는 각각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다.
보통 비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이 비는 비명이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주로 도선국사에 관한 것이며, 수미선사에 대해서는 천순(天順) 원년(1457)에 도갑사를 중창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수미선사의 비[王師妙覺和尙碑]는 20년 전인 1633년(인조 1)에 새로 만들어 대웅전 남쪽에 세웠다.
이 비는 보기 드문 거비(巨碑)로 제작하는 데에 18년이 소요되었던 만큼 비의 제작기술과 관련된 연구는 물론 조선 후기 서예와 조각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守眉禪師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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