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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405회 작성일 22-03-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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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고려시대 5층 석조 불탑.보물.

보물 제1433호. 현재 도갑사 대웅보전과 해탈문 사이 앞마당에 있는 석탑으로 중축선에서 약간 동쪽으로 비껴있다. 동남쪽으로 오래된 큰 나무가 있어 탑이 후대에 이곳으로 옮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이전에는 기단 하부가 지하에 매몰되어 있었으나 목포대학교에 의해 이루어진 4차 발굴기간인 1999년 9월에 세진당 뒤편에서 일제시대 도면에 있었던 석탑 자리를 확인하였으며 그곳에서 하층기단과 하대갑석을 수습하였다. 조사 내용에 의하면 이곳도 원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2002년 2월에 발견부재를 보강하여 2중 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2005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지정이 해제되고 보물 제1433호로 재지정되었다.



이중기단에 5층 탑신과 옥개석이 올려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과 보주가 남겨져 있다. 각 부재가 둔중하고 치석이 정치하지는 않으나 드물게 규모가 있는 탑이다.
지대석 없이 하층기단을 두었는데 중대석은 4매의 장대석을 긴 부재를 남면에 두고 동, 서 부재를 남면 끝단에 맞추어 안쪽으로 두고 북쪽은 동, 서 부재 사이에 끼워서 결구하였다. 따라서 남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를, 동과 서면은 한쪽 우주와 탱주를, 북면은 탱주만을 모각하였다. 갑석은 2매의 판석을 남, 북으로 결구하였는데 두껍고 짧아 중대석 폭과 거의 비슷하며 상부의 약간의 경사를 둔 이외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다. 상면에는 굵은 1조의 테두리를 둘러 그 안에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도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동, 서면에 면석을 세운 뒤 남, 북의 판석을 그 사이에 끼워 결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동, 서면은 양 우주를 새기고 남, 북면은 동, 서 판석의 측면을 우주로 삼고 있다. 갑석도 하층과 동일하게 2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으나 좀 더 두껍고 동, 서로 결합되어 있어 기단부 결구의 안정성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단은 수평이며 상단 중앙에는 낮은 경사진 괴임단을 두어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은 초층 탑신 이외에는 각 한 돌로 조성되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을 엇물려서 조성하여 각 면 우주는 하나만 모각하고 나머지는 옆면의 측면을 우주로 삼았다. 2층 탑신은 초층에 비해 높이가 크게 감축되었으며 나머지 층의 높이 감축은 없는 편이다. 이에 비해 탑신 폭은 각 층이 적절하게 감축되었다.
옥개석은 두껍고 처마가 경사지게 처리되었는데 밑면은 직선이며 윗선은 전각 부분에서 살짝 반전하고 있다. 모서리의 합각부가 뚜렷하며 낙수면의 경사도 급하다. 층급받침은 3층까지 5단, 4층은 4단, 5층은 3단이며 괴임처럼 낮게 새겨졌다. 상단에는 중앙에 1단의 괴임을 두어 상층의 탑신을 결구하고 있다. 탑신의 폭과 함께 각층 옥개석도 적절하게 체감하고 있으나 일부 옥개석의 재질과 양식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 긴 세월동안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는 상단에 굽형을 둔 노반석과 밑단에 받침을 둔 소박한 보주가 남아 있다. 고려 초의 작품으로 편년되고 있다.
석탑 앞에 있는 깨어진 배례석은 원 부재가 아니다.

규모가 큰데 비해 상, 하층 기단과 탑신의 결구법이 서로 다르고 전체적으로 투박하며 소박하다.
비교적 큰 규모임에도 전체적인 체감률이 자연스러워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각 부재가 투박하고 결구법이 균제되지 않았으며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비중이 낮아진 점은 시대적 하강을 보인다. 각 구성 부재가 비교적 온존하여 도갑사의 고려시대 역사를 알려 주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영암도갑사오층석탑(靈巖道岬寺五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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