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건(朴成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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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278회 작성일 22-08-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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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년(태종 14)∼1487년(성종 18).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양종(陽宗), 호는 오한(五恨).

증조부(曾祖父)는 박계원(朴季元)이고, 조부(祖父)는 박사경(朴思敬)이고, 부(父)는 박언(朴彦)이다. 1453년(단종 1) 계유(癸酉)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 임진년(壬辰年)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 5위로 급제(及第)하였다. 관직(官職)은 훈도(訓導)를 거쳐 전적(典籍)에 이르렀다. 행실이 독실하고 깨끗하며 총명하였으나 구속되기를 싫어했다. 후진(後進)을 기르는 일을 좋아해서 관직을 버리고 남쪽으로 귀향하여 영암(靈巖) 구림(鳩林)에서 소요(逍遙)하며 문장을 짓고 도학(道學)을 하며 세상을 벗어나서 살았다. 고을 사람들이 죽정서원(竹亭書院)을 지어 향사(享祀)하였다. 박성건(朴成乾)이 1480년(성종 11)에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금성별곡(錦城別曲)」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함양박씨세보(咸陽朴氏世譜)』에 실려 있다. 총 6장(章)인 이 작품은 금성(錦城: 오늘날 나주(羅州))에서 가르친 제자 10인이 소과(小科)에 급제하자 그 감격을 담고 있다. 나주 지방의 산천경개와 인물들의 빼어남, 향교(鄕校) 유생(儒生)들이 공부하는 모습 등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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