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개(崔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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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암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38회 작성일 22-05-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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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개(崔漑)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소윤(少尹) 최득지(崔得地)의 후손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임진왜란 때 최경회(崔慶會)가 격문을 보내 그를 불러서, 함께 진주(晋州)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계획하면서, 주장(主將)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주장에게 아뢰기를, “적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으니 죽을 남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청컨대 집으로 돌아가 나이 드신 아버님을 뵙고 영원한 작별의 인사라도 나눈 다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장은 그의 충정심과 효성을 기특하게 여겨,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최개가 약속한 날자에 맞추어 부대로 돌아오자, 주장은 그를 더욱 기특하게 여기며 소중하게 대했다. 성이 함락되자 주장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 일이 나라에 알려져, 최개 집의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 최개의 아들인 최흥효(崔興孝)와 최흥재(崔興悌)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뜻이 절실했다. 삼년상을 마친 다음 의병을 모집하여, 정유재란 때 외적의 목을 베고 사로잡은 공이 많았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이 그들의 공로를 기리는 보고를 올리자, 형과 아우 모두에게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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