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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행 댓글 0건 조회 2,473회 작성일 22-04-19 09:52본문
신석기시대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북방의 청동기문화가 몽고, 만주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게 되지만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중국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이다. 한반도에 청동기가 들어온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한 자료가 없지만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의 개시연대는 대개 기원전 1천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요령식동검(비파형동검)이 사용되었던 전기(기원전 1천년~3백년)와 세형동검(한국식동검)이 만들어졌던 후기(기원전 3백년~0년)의 양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다만, 청동기후기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철기가 나타난 시기가 후기의 시작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초기철기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의 청동기는 주민들 사이에 널리퍼져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신분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소수의 지배계급만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주민들은 토기, 석기, 목기 등을 실생활 용구로 계속 사용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청동기시대를 민무늬토기(무문토기)를 사용한 시기로 보고 이에 청동기, 석검 따위의 석기 등의 유물과 고인돌, 돌널무덤 또는 돌무지널무덤 등의 묘제를 관련시켜 시대를 규정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비파형동검을 비롯한 청동도끼, 청동촉, 청동손칼, 청동끌, 거친무늬거울 등의 청동기가 사용되었으며 민무늬토기, 가지문터기, 붉은간토기 등 토기류와 돌검, 돌화살촉, 턱자귀, 홈자귀, 돌칼 등의 석기류와 함께 목걸이 장식인 곱은옥, 대롱옥도 사용되었던 시기이다. 무덤은 고인돌, 석관묘 또는 돌무지널무덤, 소형독무덤이 쓰여졌다.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한국식동검, 청동꺼창, 청동창, 잔무늬거울, 손에 쥐고흔드는 청동방울, 말방울, 동물형 허리띠장식 등의 청동기가 사용되었으며 철제품으로는 창, 도끼, 촉 등의 무기 이외에 괭이, 낫, 반달칼 등의 농기구가 있으며, 토기는 아가리띠토기, 흑색간토기가 있다. 무덤으로는 돌곽무덤, 나무곽무덤, 독무덤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청동시대 대표적인 우적으로는 북한에서는 함북 회령 오동, 나진 초도, 평북 강계 공귀리, 의주 미송리, 평남 승호 금탄리, 황해 봉산 지탑리, 남한에서는 경기 여주 흔암리, 파주 옥석리, 서울 가락동, 충남 부여 송국리, 강원 강릉 포남동, 광주 송암동, 영암 장천리, 승주 대곡리 유적이 있다. 청동기 후기에는 대동강유역, 금강유역, 낙동강 중류지역, 영산강유역 등지가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반지하의 네모모양(방형)으이 움집을 나즈막한 야산이나 강가 평지에 짓고 살았으나 충남이나 전남지방에서는 둥근모양(원형) 또는 타원형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이 시대는 수수, 기장, 조 같은 밭 곡식뿐만 아니라 벼 농사도 지을 줄 알았으며 돼지, 소, 말, 개 등을 길렀다.
전남지방에서의 선사문화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문화형성 단계에 돌입하게 되고 어느 시기보다도 이 시대의 유적이 가장 많이 조사되고 연구된 시대이다. 영암지방에서는 아직까지 구석기.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며 영암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 문화유산 중에는 특히 돋보이는 유적 유물들이 많아 청동기시대 문화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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