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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행 댓글 0건 조회 2,435회 작성일 22-05-03 11:16본문
1. 몽고의 침입과 영암
13세기 초엽에 이르러 몽고족이 새로이 흥기하며 북방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게 된다. 고려정부와 대정복국가인 몽고의 첫 접촉은 고종 5년(1218) 12월 강동성에 응거하고 있던 거란족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몽고가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부터이다.
거란족을 토벌한 몽고는 고려의 은인으로 자처하고 매년 고려로부터 많은 공물을 수탈해갔다. 그 요구가 지나치게 무거운 것이어서 때로는 이에 불응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양국관계는 긴장과 불화의 연속이었다. 공물의 징수를 둘러싼 양국의 긴장관계는 몽고 사신 저고여가 귀국 도중에 피살되면서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고, 침략의 명분을 찾던 몽고는 동방정복의 일환으로 고려에 침략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몽고는 고종 18년(1231)에서 동왕 46년(1259)에 이르는 약 30년 간에 걸쳐 6차례나 고려의 전 국토를 유린하였다. 몽공의 고려에 대한 침입회수를 연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차 침입 : 고종 18 ~ `9년(1231 ~1232) 살례탑
제2차 침입 : 고종 19년(1232) 살례탑
제3차 침입 : 고종 22 ~ 26년(1235~1239) 당고
제4차 침입 : 고종 34 ~ 35년(1247~1248) 아모간
제5차 침입 : 고종 40 ~ 41년(1253~1254) 야굴
제6차 침입 : 고종 41 ~ 46년(1254~1259) 차나대
몽고군의 1차 침입이 있고 화의가 성립된 직후 고려정부는 강화에 천도함으로서 단호한 항전 결의를 보여준다. 몽고군의 무자비한 약탈과 살륙에 고려의 민중들은 영웅적으로 항전하였다. 귀주성 싸움의 김경손과 박 서, 자주성 싸움의 최춘명, 처인성과 충주성 싸움의 승장 김윤후 등은 세계 최강의 무적을 자랑하던 몽고군에게 무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특히 항몽전쟁에는 초적이라 불리는 농민반란군까지 가담하였다. 고려정부의 가혹한 수탈에 항거하여 봉기하였던 농민들도, 몽고군의 침략에 대항해서 고려인의 투혼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광범위한 민중들의 적극적인 항몽전쟁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의 고려 정부는 고종 18년(1231) 1차 침입 이후 고종 46년(1259) 4월 태자 전(후의 원종) 몽고 입조가 성사될 때까지 30년 가까이 몽고군의 무자비한 유린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강화도로 들어간 고려정부는 개경에서와 다름없는 호사스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고, 강화의 궁성과 자택 등 모든 시설은 개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여 '금탕만세제왕지도'라 칭송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강화도의 태평성세는 안전한 해상 통로를 통한 조세의 징수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조세의 징수는 농민을 비롯한 피지배계층에 대한 수탈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특히 비옥한 평야지대인데다 몽고군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았던 전라도 지방에 대한 수탈은 극에 달하였다. 몽고군과 최씨정권으로부터 이중적인 약탈과 착취를 당하던 농민들은 고려 정부에 대해 저항의 깃발을 올렸고, 전라도에서는 담양에서 일어난 이천년 형제의 봉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자칭 '백적도원사'라 하여 백제부흥을 내걸고 고려정부와 대항하여 싸웠던 것이다.
몽고의 침략세력이 전남 지방에까지 미쳤던 것은 6차 침입 때였다. 몽고군의 침입에 대하여, 전남지역에서 치열한 전투상황은 전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안의 장정들이 모두 적에게 투항하였다'거나 '몽고병이 오는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최씨정권과 고려정부의 이 지역 농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오히려 몽고병이 오는 것을 기뻐할"정도로 가혹했던 것임을 알려주는 단계적인 예이다. 본토에 남아있던 백성들에게 강화도 정부는 원성의 대상이었고 또한 완전히 이탈되어 있었던 것이다.
몽고군이 전남지방을 점거한 기간은 약 6개월 간으로 그리 오래 가진 못하였다. 몽고군잉 고려에서 퇴각하고, 양국간에 강화가 성립되어 기나긴 몽고의 침략과 약탈에서 일단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몽고의 고려에 대한 간섭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고려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대몽항쟁의 기치를 올렸던 세력이 삼별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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