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조선 중기의 무신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선조 3049년(1597)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과 함께 용맹을 떨쳤다. 광해군 7년(1615)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을 세워 3등공신으로 학성군에 봉해졌다. 인조 12년(1634) ...
회사정은 서구림리 서호정마을 도기문화센터 정문 앞에 있다. 호남의 대표적인 웅장한 정자로 1646년 박성오, 조행립, 현건 등이 구림대동계의 집회장소로서 건립하였다. 그후 강학, 여러고을에서 찾아온 손님맞이, 경축일 때 행사 등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1919년 4월에 박규상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구림대동계는 1565년 창설되어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있는 호남의 대표적인 동계(洞契)이고 회사정은 그 상징물이다.&...
장암정은 장암 대동계에서 현종 9년(1668)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 백일장, 회갑연 등과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동약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영조 36년(1760), 정조 12년(1...
영팔정은 고려말∼조선초 문신인 하정 류관(1346∼1433)이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아들 맹문에게 시켜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자와 호인 하정의 ‘정’자를 따서 ‘모정’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 이이·고경명·남이공·류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영보정은 연촌 최덕지(1384∼1455) 선생이 관직을 떠난 후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위 신후경과 함께 지은 정자이다.최덕지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처음 있던 정자는 황폐화 되어서 최정과 신천익(1592∼1661)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정자는 앞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