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공신인 전봉성(1561∼1597)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천안 전씨인 전봉진과 전봉대를 함께 모시고 있다.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인 고경명을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했으며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함평군수에 제수되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유장춘 등과 힘을 합쳐 율치전투에서 싸우기도 하였으나 아쉽게 선조 30년(1597) 현석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이 건물은 숙종 32년(1706)에 보수하였고, 영조 52년(1776) 전봉진, 헌...
임진왜란 때 순국한 박형준(1548∼1592)과 그의 아들인 박효남(1568∼1592)·박호남(?∼1592) 등 3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이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이다.조선 헌종 12년(1846) 이 지방 유림들이 상소문을 올려 철종 11년(1860) 지은 것이다. 고종 38년(1901), 1932년 2차례 보수를 하였고 1946년에 다시 지었으며, 1982년 지금의 모습으로 고쳐 세웠다.규모는 앞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유적으로,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천리 괴음마을 앞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지름 4.3∼5.2m의 움집터이며, 형태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 얕은 구덩이가 있고, 바닥면 가장자리에 기둥구멍이 마련되어 있는데, 화로터나 출입구가 없는 것이 특색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항아리형·사발형의 무늬없는토기, 화살촉·가락바퀴·삼각형 돌칼 등 석기류가 있다.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
국가의 평안함과 남해안 지역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국가 주관으로 남해신령께 제사지내던 제사터이다.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동해의 양양,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 등 3곳에 해신당(海神堂)을 두고 국가에서 제사를 거행하였다. 남해당은 그 3곳 중의 하나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봄·가을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0년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후 제사가 중단되었다.남·북을 일직선으로 하여 중앙에 6...
마을사람들이 ‘동산’이라 부르는 둥근 봉토를 가지고 있는 무덤이다.영산강유역의 무덤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하며 겉모습과는 달리 밑뿌리에서부터 네모지게 하여 봉분을 마련한 피라미드형 무덤이다. 아직 정식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덤의 성격과 구조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무덤 주변에서 수습되는 독무덤(옹관묘)의 항아리 조각과 주변지역에서 비슷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는 무덤을 조사한 자료로 미루어 보아 원삼국시대의 독무덤으로 추정하고 있...
전라남도 영암군 내동리에 있는 매우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는 쌍무덤이다.무덤에 대한 성격과 구조는 정식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근처에 있는 초분골(草墳谷) 고분 발굴 조사결과 봉토내에 독무덤이 묻혀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마한시대의 지배계급 무덤으로 생각되며 이 쌍무덤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전씨 충효문(全氏 忠孝門)은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전몽성(全夢星)[1561~1597]과 전몽진(全夢辰)[1565~1597]의 충절을 기리고, 전몽태(全夢台)[1571~?]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워진 정문(旌門)이다.전몽성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동생인 전몽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암과 강진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전몽태는 전몽성의 막내 동생으로 효성이 지극하였고, 이괄의 난 때...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묘는 원래 해남면(海南面)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1718년(숙종 44)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전체넓이는 1,416㎡ 정도이다.묘전에는 묘비·상석·향로석 등을 설치하였고, 문인석·망주석·동자석을 각각 쌍으로 하여 양옆에 세웠다. 신도비는 1905년(순조 5)에 세운 것으로, 묘를 이장하면서 세운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207cm, 너비는 85.5cm이며, 묘역에서 ...
왕인박사유적지는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다.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堀)과 문산재(文山齋) ·양사재(養士齋)가 있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계서 공부하면서 고향 인재를 길러 낸 곳으로 매년 3월 3일에는 왕인박사의...
높이 810.7m 소백산계에 속하는 해안산맥의 말단부에 높이 솟은 산체는 견고한 석영반암과 분암류로 구성되어 있어 수목이 잘 자랄 수 없는 급경사의 지형을 이룬다. 기암괴석이 많아 남국(南國)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불린다.산의 최고봉은 천황봉(天皇峯)이며 남서쪽에 연이은 구정봉(九井峯, 743m)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영암군, 남쪽은 강진군이 된다. 구정봉 남쪽으로는 도갑산(道岬山, 376m)·월각산(月角山, 456m) 등이 있으...
부춘정은 강진에서 영암으로 입향 한 진주강씨 문중에서 1618년(광해군 10)에 건립한 것으로 1672년경 등 몇 차례 중수하였다. 안쪽이 전부 방으로 구성된 구조로 보아 단순한 정자로서의 기능 보다는 서재와 학숙 기능도 함께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주변풍광도 뛰어나 관련시문이 다수 전하고 있다. 특히, 건조물 구조의 희귀성 등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부춘정은 평면 구성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전면(前面)을 벽 없는 마루로 하고 배면(背面...
도갑사 경내에 서 있는 비로,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수미는 조선시대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였고, 불교를 숭상했던 세조 임금이 그 스승(왕사)으로 모셨던 인물이다.비는 거북모양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형식적으로 조각된 거북받침은 머리가 용의 머리처럼 바뀌었으나, 목이 짧다. 앞발과 뒷발의 발톱이 다섯개씩이다. 거북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이 매우 두껍게 조각되어 있다. 비몸 위에...
죽정마을 옛 담장은 흙을 채우지 않고 돌만 사용하여 줄맞춤 없이 쌓은 돌담과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섞여 있다. 죽정마을은 삼한 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예부터 바다로 나가는 뱃길이 있어 중국‧일본과 교류하던 중심지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가옥의 벽체, 하천 제방과 옛 돌담이 잘 조화되어 우리의 전통 마을경관을 잘 연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여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영암군 월곡리 느티나무는 나이가 약 516살(지정당시)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 7.48m이다. 마을의 정자나무로서 ...
최원립(崔元立, 1618~1690)은 수군절도사를 지낸 조선 숙종 때의 무관이다. 2001년 영암에 있는 최원립 장군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복식류를 비롯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보수 및 보존 처리과정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담인복식미술관에 위탁 소장 중에 있다.최원립 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복식류를 비롯하여 이불, 지석 등 총 56점으로, 출토지(전남 영암군)와 연대, 묘주의 인적사항이 분명하고, 복식 형식에 있어 변화가 뚜렷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