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 김준연

관리자 | 2013.01.30 14:42 | 조회 2768

김준연 선생은 1895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월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오카야마(岡山) 제6고등학교(대학예과 과정), 동경제국대학 대학원, 독일 베를린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한 천재였다.
낭산(김준연의 호)은 한국 최초의 해외특파원(조선일보 특파원)으로 1920년대의 소련을 시찰했고 조선일보특파원, 논설위원, 전 조선공산당 당수,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신간회 조직, 제3차 공산당 사건, 일장기말살 사건, 흥업구락부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 등을 주동하여 국내에서는 가장 격렬한 항일투쟁에 참여, 8년 동안의 감옥 생활과 9년 동안의 연금 생활을 하였다.

일제시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용기있게 대항하고 가장 격렬하게 투쟁해 온 낭산은 김창숙 선생과 양대 산맥을 이룬 항일 세력이었으며 재야 세력의 제1인자로 일제가 가장 경계하고 감시하는 요시찰 대상 제1호의 인물이었다.
8·15 해방이 되자 일제 당국은 낭산에게 정권 인수를 제의했으나 낭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일화가 입증하듯 낭산은 국민들로부터 인기와 신망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며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이후 낭산은 한민당 부당수 겸 선전부장으로 있으면서 제헌국회의원, 헌법기초위원이 되어 직접 대한민국의 헌법을 작성했고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가장 큰 공훈을 세운 건국의 원훈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내무장관 조병옥 박사와 더불어 대구사수의 대공을 세웠으며 1·4후퇴 때 법무장관으로서 안전한 철수를 위한 계획을 입안하기도 했다.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낭산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7차에 걸쳐 군사정권세력을 향해 폭탄연설을 하여 군사정권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낭산은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령하였으니, 이는 선생에 대한 국가의 당연한 답례였다.

낭산의 80 평생은 곧 우리 나라의 항일투쟁사요 건국의 역사이자, 반공· 반독재의 투쟁사요 한국의 정치사이며 근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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